1972년, 이탈리아 천재 엔지니어 ‘마시모 탐부리니(Massimo Tamburini)’ 는 혼다 CB750으로 서킷 주행을 하던 중 전도되어 갈비뼈 3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된다. 그는 몸을 회복한 후 CB750 프레임의 강성과 무거운 무게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생각했고, 이를 개선한 커스텀 모터사이클을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비모타의 이름으로
1966년, 발레리오 비앙키(Valerio Bianchi), 쥐세페 모리(Giuseppe Morri), 마시모 탐부리니(Massimo Tamburini)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만든 브랜드 'BIMOTA' 는 원래 공조설비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1973년, 탐부리니는 자사의 파이프 가공기술을 활용해 CB750의 프레임을 커스텀했고, 비모타 최초의 모델인 ‘HB1(Honda+Bimota)’를 출시한다.
최초의 공도용 모델 출시
브랜드 출범이후 꾸준히 레이스에 출전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리던 비모타는 1977년, 브랜드 최초로 일반도로를 달리는 용도로 만들어진 SB2를 출시한다. 일본 브랜드 스즈키사의 GS750의 배기량 750cc 4행정 DOHE 엔진을 사용해 만들어진 모델로 1975년에 출시한 500cc 2행정 엔진을 장착했던 레이스전용 모델인 SB1 이후 두번째로 스즈키 엔진을 사용했다. 처음으로 가와사키 엔진을 사용했던 KB1은 이듬해 출시됐다.
1980년대, 혁신과 영광
MOTO GP 챔피언 십 타이틀 획득
1970년대의 그랑프리에서 비모타제 프레임을 이용한 야마하, 할리데이비슨의 머신이 활약하며 세계 타이틀도 획득했었지만 이는 비모타의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1980년, 모터사이클 레이스 최고봉이라 할수 있는 MOTO GP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영되었던(1949~1982년) 350cc 클래스에 비모타는 야마하 TZ350엔진을 장착한 YB3을 가지고 출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존 에커롤드(Jon Ekerold)' 함께 달린 비모타는 유수의 브랜드를 제치고 MOTO GP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다.
허브 센터 스티어링?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박람회인 'EICMA (이태리 밀라노 모터사이클 박람회) 1983'에서 모든 참가자들을 사로잡는 모터사이클이 등장한다. '허브 센터 스티어링(hub-center steering)'이라는 생소한 기술을 장착한 이 프로토타입은 당시에도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놀라운 모터사이클이었다. 이탈리아어로 'TESI'는 '논문'을 뜻하며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 페이를루이지 마르코니(Pierluigi Marconi)'가 볼로냐 대학의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던 새로운 모터사이클의 콘셉트였다. 현재 그는 비모타의 최고 운영책임자이자 전설적인 엔지니어로 불리고 있다.
Formula TT 챔피언 십 타이틀 획득
오랜기간 동안 혼다를 비롯한 대형 브랜드가 우승을 해오던 '포뮬러 TT (WSBK의 전신)'에서 비모타는 또 한번의 기적을 일으킨다. 야마하의 FZ750 엔진을 사용한 YB4R이 '버지니오 페라리(Virginio Ferrari)' 함께 달려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것. YB4R은 오로지 레이스에 참가하기 만들어진 머신이었지만 1988년도, 엄격해진 WSBK 참가를 위해 200대의 레플리카를 양산하여 판매하여만 했고, 그리하여 진정한 레이스 레플리카라 할 수 있는 YB4가 일반 라이더들에게 판매가 이뤄졌다. 물론 지금까지 남아있는 차량들은 모두 수집가들의 품안에 잠자고 있을듯 하다.
1990년대, 자부심이 부른 대가
TESI 시리즈, 전설의 시작
EICMA 1983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던 TESI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두카티 엔진을 사용해 'BIMOTA TESI 1D' 라는 이름으로 양산되었다. 비모타의 재정난 속에서 어렵게 탄생한 이 기념비적인 모델은 딱 127대만이 생산되었고, 가격 또한 너무 비싸서(당시 한화로 3,300만원) 일반 라이더들은 꿈도 꾸지 못할 모터사이클이었다. 물론 지금은 부르는게 값이 되어버린 레전드 중의 레전드가 되었다.
모여라, 비모티스토(Bimotisti)
1995년, 연간 생산대수를 1,250대로 늘리며 본격적인 대규모 모터사이클 생산업체로 거듭난 비모타.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1996년도에는 전 세계 비모타 오너들을 위한 월드미팅(World Meeting)을 이탈리아 레이스의 성지인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위치한 미사노 월드 서킷에서 진행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세계 비모타 마니아들을 지칭하는 '비모티스토(Bimotisti) '를 공식화한다.
애증의 'BIMOTA 500 V Due'
105마력을 발휘하는 배기량 500cc V트윈 '2행정' 엔진을 장착하고 전자식 연료분사를 채용한 놀라운 모터사이클. 차량중량 171kg라 당시 마력대비 중량 비율이 모든 바이크를 능가했다. 참고로 이 엔진은 비모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제작한 엔진이다. 바로 이 엔진의 결함으로 인한 초기 생산분 150대의 리콜 및 배상문제로 재정난에 빠지게되었다. 하지만 비모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함을 해결했으며, 2005년까지 레이스 베이스 모델 14대와 공도용 모델 120대를 추가 생산했다. 지금은 수집가들 사이에서만 거래되는 귀한 모터사이클이 되었다.
2000년대, 짧은 성공시대
WSBK 우승, 'BIMOTA SB8R'
1994년 19살의 나이에 데뷔해 가와사키 NINJA ZX-7RR을 타고 미친 재능을 보여줬던 레이서 '앤서니 고베어(Anthony Gobert)'. WBSK에서의 성공으로 MOTO GP까지 진출했었지만 커리어내내 기행을 일삼으며 늘 반항적인 문제아, 그 자체였다. 2000년도에 WSBK로 복귀해 비모타와 함께 달린 그는 자국인 호주의 필립 아일랜드 서킷에서 개최된 수중레이스에서 SB8R과 함께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이었지만 비모타에서는 따로 SB8R의 고베어 에디션 'SB8K'을 출시할만큼 뜻깊었던 승리였다. SB8R은 모델명에서 알다시피 스즈키의 TL1000R의 배기량 996cc V-트윈엔진을 사용해 비모타가 제작한 모델이다. 단조가공과 카본바이퍼로 구성된 파츠, 최고급으로 구성된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시스템, 엔진에 가장 최적으로 구성된 프레임, SB8R는 스즈키가 현실에 장벽에 부딪혀 양산하지 못한 TL1000R로 불릴만큼 완성도가 뛰어났다.
자부심과 바꾼 파산, 그리고 부활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모타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았던 500 V Due는 독약이 되었다. 비모타가 직접 개발한 엔진은 자부심도 주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난까지 불러왔다. 2001년 비모타는 역사상 처음으로 파산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이탈리아 장신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으며,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또한 비모타라는 브랜드 가치가 이대로 색이 바래기엔 아직 빛이났다. 2003년, 비모타의 초대회장인 탐부리니의 제자이자 천재 모터사이클 디자이너 '세르지오 로비아노(Sergio Robbiano)'를 기술이사로 임명하며 투자 받았고, 부활의 날개짓을 펄럭였다. 이듬해 독일 퀼른에서 개최된 모터사이클쇼 '인터모트(INTERMOT) 2004' 자국 브랜드인 두카티 엔진을 장착한 DB5를 공개했고 해당 차량은 모터사이클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다시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국 브랜드와의 연속합작
경영진 교체 후 실리적인 가치를 추구한 비모타는 자국의 두카티 엔진을 장착한 모델들을 연이어 출시한다. DB5의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 해당 차량의 네이키드 버전인 DB6을 출시하고 2005년도에는 10년만에 TESI 1D의 후속작인 TESI 2D를 발표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가격과 이전모델과는 다른 네이키드 스타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07년에는 TESI 2D을 보완한 TESI 3D를 출시했고, 2008년에는 두카티 1098 L트윈 엔진을 장착한 후속기종인 DB7를 선보였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매출과 경영악화로 인해 DB7은 로비아노가 비모타에서 마지막으로 디자인한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역사적인 브랜드가 또 다시 문을 닫을 상황만은 없어야 했기에 그들은 새로운 투자자인 '마르코 치안시아네시(Marco Chiancianesi)' 와 '다니엘레 롱고니(Daniele Longoni)' 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2010년대, 새로운 시작
충격의 공장폐쇄
바톤을 이어받은 새로운 주인들은 EICMA 2012를 통해 비모타 역사상 가장 빠른 모델인 BB3 선공개한다. 독일의 BMW S1000RR의 엔진을 장착한 이 모델은 이듬해인 2013년, 야심차게 출시되었으나 시장과 비모티스토들이 바라던 기대치를 충족하지는 못했다. 꼭 성공해야만 했던 BB3는 2015년도까지 총 26대의 완성차만이 생산되는데 그쳤고, 그 뒤로는 컨버전 키트만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DB7의 양산형 버전이라 할 수있는 DB8도 라인업에 있었으나 판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비모타는 결국 2017년도에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사업을 중단한다. 1966년 공조설비 제작으로 시작해 전 세계 유수의 모터사이클 레이스에서 트로피를 따내던, 이탈리아 중부의 항만도시인 '리미니(Rimini)'의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었던 비모타의 공장은 그렇게 문을 닫게 되었다. 첫문을 연지 60년, 그리고 첫번째 파산으로부터 16년만이었다.
희망의 초록색 빛줄기
이탈리아 모터사이클 레이서 출신이자 열성적인 비모티스토그 자체인 CEO '마르코 치안시아네시' 는 결코 비모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리미니의 역사 깊은 장인공방이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렵게 이룬 희망을 이어나가기 위해 믿음직한 투자자를 수소문했다. 그 결과, 한 모터사이클 브랜드와 연이 닿았다. 3년 동안 협상을 주고받으며 이끌어 낸 계약. 바로 일본의 4대 브랜드 중 가장 진취적인 브랜드 '가와사키'였다. 밀라노 모터사이클 쇼 EICMA 2019에서 비모타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BIMOTA TESI H2' 프로토타입 모델과 함께 자랑스러운 재등장의 서막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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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모터사이클
EICMA 2019에서 공개되었던 TESI H2가 2021년 드디어 250대 한정판으로 일반라이더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가와사키의 고성능 슈처차저 엔진과 비모타의 상징적인 허브 센터 스티어링의 조합은 가히 혁신적이었으며 수많은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후 2022년도에는 KB4를, 2023년도에는 자사 최초의 엔듀로 모델인 BX450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가와사키 모터스 회장 '히로시 이토(Hiroshi Ito)'는 비모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비모타는 놀라운 섀시, 보석같은 파츠, 감당할 수 없는 가격표를 가진 꿈만꾸던 전설적인 모터사이클 브랜드이기에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비모타는 이탈리아의 보석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리미니에 기반을 두고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장인이 제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치를 잃을 것이다. 가와사키의 전설적인 엔진으로 비모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 세계최고의 프리미엄 모터사이클이 비모타임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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